서울역에서 새마을호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오면서 새마을호의 정차역 이름들.
영등포, 수원, 평택, 천안, 조치원, 대전, 영동, 김천, 구미, 왜관, 대구, 동대구, 경산, 청도, 밀양, 구포, 그리고 부산.
다양한 색깔의 도시에 대한 정보가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지 않다.
도시는 인간과 함께 호흡하기에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가장 많이 닮았다.
아무리 세상이 비슷해져간다고 해도 말이다. 그렇게 도시는 사람과 함께 성장했고, 사람을 품고 있다.
나는 새마을호가 정차하는 곳들을 여행 다닐 계획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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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우리 집에서 잠시 머물고 있는 부산 어머니 댁까지 가는 시간은 꼬박 만 하루가 걸린다. 24시간,
비행기 스탠더드를 타고 무거운 짐을 끌고 밀고 24시간을 길 위에서 보내는 것은 고역 중에 고역이다. 사실, 그,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라던가, 새로운 도시를 맞이할 설렘, 여행의 하루하루를 위한 계획은 집과 집으로 이동할 때는 머리나 마음속에서 사라져 버린다.
그저 자리가 비좁고, 짐은 무겁고, 편히 들어 누울 수 있는 공간까지의 시간은 길고...
이번 여행은 다행히 서울에서 열흘 넘게 묵게 되면서 24시간의 이동 시간의 고단함은 느끼지 못했다.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 시간이 짧을수록 정신적, 육체적 고통은 심하다. 그렇게 스트레스가 되는 건데, 이번 여행은 한 곳의 포인트가 있어 급하지 않게 즐기면서 부산에 내려갈 수 있었다.
서울 부산 간 KTX가 생긴 이후, 약속이나 일에 쫓기던 나는 거의 새마을 호를 타고 움직인 적이 없다.
꽤 오랜 시간을 한국에서 살았고, 부산이 고향이지만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하며 서울 부산 오가며 살아온 시간 동안 나는 왜 이 많은 정차역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는 것일까?
서울역에서 새마을호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오면서 새마을호의 정차역 이름들.
영등포, 수원, 평택, 천안, 조치원, 대전, 영동, 김천, 구미, 왜관, 대구, 동대구, 경산, 청도, 밀양, 구포, 그리고 부산.
이 많은 역의 이름들이 낯설지 않을 뿐, 도시에 대한 특별한 정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새마을 호의 정차역이 있는 도시 여행은 어떨까?
문득 머리 속에 가득 차, 탈출이 힘든 생각들이 줄을 잇는다. 여행지를 결정했고, 어떤 방식으로의 여행이 나에게 많은 기억들을 만들어줄까!
잠은 어디서 자고, 여행 경비는 얼마 정도가 필요할까!
어느 도시부터 여행을 시작할까!
천 리 길 여행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글을 쓰면서 내 머리는 초스피드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한국에 와서, 남에서 북으로의 여행이라니...
가슴이 떨린다.
옛 기억 속의 새마을 열차는 그저 열차 승객 칸 안에서 밖으로 보이는 세상 구경이었다면, 이제는 열차가 서는 정차역을 중심으로 한 한국 여행이다. 제일 먼저 어디를 갈까!
가만 생각해보니 유럽의 많은 도시를 방문하고 여행한 경험 보다 한국의 도시를 여행한 경험이 훨씬 적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3월, 나는 새마을호 정착역 중심의 여행을 기획하고 4월에는 남에서 북으로의 여행을 계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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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호 열차에 대한 짧은 상식:
1969년 한국에서 가장 고급 열차는 관광호였고, 그 열차의 이름이 1974년 새마을 운동에서 딴 새마을 호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 이후 30년간, KTX가 등장하기 전까지 한국에서는 롤스로이스급 열차였다. 지금은 운행 수가 많이 줄었고 서울 부산을 왕래하는 많은 사람들은 KTX, SRT를 타고 다니지만, 나는 대학 시절, 새마을호 아래 등급 격인 무궁화호를 타고 다녔던 기억.
언젠가는 추억이 될, 옛 것들.
지금은 있지만 곧 사라질 것들에 대한 추억 한 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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